구글 AI 스피커 — 그들은 왜 망할 사업을 했을까?
창고에 박아둔 구글 스피커를 다시 떠올려봤다. 인터페이스의 종착점이 음성이라는 가정은 틀렸고, 결국 모바일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AR을 보면 버틴 쪽이 가져가기도 해서, 사업은 결국 시대를 타고 나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봤다.
들어가며
예전에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면 구글 AI 스피커를 공짜로 줬다.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정도로 쓰다가, 노래 재생까지는 됐지만 검색이나 인식이 너무 답답해서 결국 창고에 넣어뒀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에 새 모델 리뷰가 여럿 올라온다.
지금의 내 시선으로는 다른 게 궁금해졌다. ‘구글은 왜 자꾸 안 될 사업에 뛰어드는 걸까?’
그건 아마 트로이 목마였을 것이다
구글이 스피커를 판 이유가 스피커를 팔고 싶어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바일에는 이미 강한 선두주자들이 있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그다음은 무엇인가’가 된다.
인터페이스의 역사를 늘어놓고 선을 그어보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천공카드에서 키보드로, GUI로, 터치로, 그리고 음성으로.
그 선을 그대로 연장하면 종착점은 음성이다.
물론 음성은 모바일로도 된다. 하지만 모바일 위에서는 그 인터페이스를 선점할 수 없으니, 새 하드웨어를 집 안에 먼저 깔아두는 쪽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기기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음 관문을 미리 차지해두는 사업이었을 것이다.
그 가정은 정확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큰 대격변은 없을 것 같다.
모바일이 음성을 인식하지 못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새 인터페이스가 기존 기기 위에서 그대로 구현되면, 그 인터페이스를 위한 전용 기기는 존재할 이유를 잃는다.
결국 스피커의 본질은 스피커에 남을 것 같다.
결국 모바일이 이겼다
그렇다고 모바일 쪽이 시원한 것도 아니다.
Siri가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하며 핸드폰을 바꿨는데, 결국 답답한 건 비슷했다.
메모리 관리나 하네싱 영역을 내가 손볼 수 없으니, 매번 적당한 AI 모델을 새로 켜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 부분도 발전하긴 할 것이다. 사용자가 하네싱을 몰라도 알아서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갈 것 같다.
그래도 그 종착지가 스피커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글, 그 똑똑한 그룹에서 무엇이 틀린 걸까?
첫 번째는 자연스러움이 더 좋다는 판단이었을 것 같다.
말하는 쪽이 누르는 쪽보다 자연스러우니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봤을 텐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조용히 누르는 쪽을 계속 골랐다.
두 번째는 좀 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래 산업에 대한 도전은 결국 어떤 가정을 확신으로 선언하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다. 확신 없이는 조직도 예산도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선언 자체가 오차의 출발점이 된다. 가정을 확신의 형태로 바꾸는 순간, 그 가정을 다시 의심하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멍청해서 생긴 실수라고는 보지 않는다. 큰 베팅을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에 붙어 있는 비용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접지 않을까
매몰 비용의 문제도 분명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쓴 돈과 시간이 아까운 건 구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다만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
일반인이 생각하지 못한 돌파구가 나올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
계속 시도하지 않으면 그 돌파구가 왔을 때 잡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AR과 VR도 비슷하게 보게 된다.
2010년 전후로 이 분야는 굉장히 발전이 많았다. 나조차 대학생 때 AR과 VR을 연구했으니까.
그런데 시장이 주목한 건 최근이다. 의외로 VR은 모호해졌고, AR은 꽤 많이들 쓴다.
메타 글래스가 그렇다. AI와 접목해서 사용성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고, 아마 지금은 내 시야를 그대로 촬영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메리트가 있는 것 같다.
메타가 이 사업에 투자한 것도 10년이 넘었을 것이다.
그럼 그동안 버티지 못한 회사들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다음 세대를 위한 경험치만 뿌리고 사라진 것일까.
먼저 뛰어든 사람들은 시장을 데워놓고 죽는 것 같다
구글 글래스가 2013년이었다. 매직리프는 수조 원을 태우고 좀비처럼 남았다.
이 회사들이 만들어낸 인재와 기술, 그리고 ‘이건 이렇게 하면 망하는구나’라는 학습은 전부 다음 주자에게 흘러간다.
메타 글래스가 지금 그나마 뜨는 건 메타가 특별히 똑똑해서가 아니라, 앞선 실패들이 데워놓은 시장 위에 착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업은 타이밍이 8할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잔인한 사실이 하나 더 붙는다.
살아남는 건 타이밍이 올 때까지 버틸 이유와 자본이 있는 쪽이라는 점이다.
구글도 메타도 애플도, 스피커든 글래스든 실패한다고 회사가 죽지는 않는다. 그러니 때가 올 때까지 계속 던질 수 있고, 결국 대기업이 먹는다.
반대로 개인이나 스타트업이 먼저 들어가면 선구자라는 훈장과 함께 파산한다. 매직리프가 딱 그 자리였던 것 같다.
결국 시대를 타고 나느냐가 아니라, 그 시대가 올 때까지 살아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마치며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처음에 던진 질문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 망할 사업을 했을까’라고 물었지만, 망할 사업인지는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판단들도 대체로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가정을 확신으로 바꿔야 움직일 수 있고, 그 확신이 틀렸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기존 제품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