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이긴 건 기술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구텐베르크는 파산했고, 포드는 공장을 재배치했다. 역사 속 기술 전환기마다 이긴 건 발명한 쪽이 아니라 재설계한 쪽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작업 방식 전체를 AI 전제로 재배치해보는 중이라는 이야기.
들어가며
역사에 이런 전환기가 처음이었을까?
인쇄술이 그랬을 것이고, 전기가 그랬을 것이고, 인터넷이 그랬을 것이다.
그때는 누가 이겼을까?
이긴 사람은 기술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기를 발명했지만, 투자자에게 소송당해 공방을 통째로 뺏겼다.
이긴 건 반세기 뒤 베네치아의 알두스 마누티우스였다. (이름이 참 길다..)
이 사람은 인쇄 기술이 아니라, ‘뭘 찍을 것인가’를 판 사람이다.
고전을 선별하고, 들고 다닐 수 있는 판형을 만들고, 자기 출판사 마크를 품질 보증으로 만들었다. 인쇄가 흔해진 자리에서 선별과 신뢰를 판 것이다.
전기도 비슷했다. 공장에 전기 모터가 들어오고도 생산성은 40년 가까이 제자리였다고 한다.
다들 증기기관이 있던 자리에 모터만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이긴 건 포드였다. 전기 덕분에 기계를 공정 순서대로 늘어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공장 구조 자체를 재배치해 조립라인을 만들었다.
인터넷 때도 마찬가지다. 광케이블을 실제로 깔던 통신사들은 버블과 함께 무너졌고, 그 인프라 위에서 구글과 아마존이 컸다.
세 번 다 같은 패턴이다. 공식인건가..? 발명한 쪽이 아니라, 기술을 전제로 판을 다시 짠 쪽이 이겼다.
기술은 뭔가를 흔하게 만들고, 그 순간 다른 것이 희소해진다
이 패턴을 자세히 보면 구조가 보이는데, 인쇄술은 복제를 흔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신뢰와 선별이 희소해졌다.
전기는 동력을 흔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공정을 재설계하는 능력이 희소해졌다.
인터넷은 유통을 흔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주목과 발견이 희소해졌다.
‘희소해진 것이 없던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할 것 같긴 하다. 새로운 개념이 탄생되었고, 그 개념 위에 또 다른 개념을 얹은 것이니까.
다만, 승자들은 기술을 먼저 쓴 사람이 아니었다.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희소함을 먼저 알아채고, 그 자리를 선점한 사람이었다.
그럼 AI는 무엇을 흔하게 만들고 있나.
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코드를 짜고, 글을 쓰고, 조사하고, 만들어내는 일.
공장을 재배치해야 한다
전기화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지금 대부분의 AI 사용이 ‘증기기관 자리에 모터 끼워 넣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두고, AI를 도구 하나로 옆에 붙이는 것.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다르게 해보고 있다. 내 개인 작업 공간 전체를 AI를 전제로 다시 짰다.
폴더 구조와 문서와 규칙을 전부 에이전트가 읽고 움직일 수 있는 형태로 바꿨다. AI 어시스턴트에게 이름과 기억을 주었고, 매시간 스스로 할 일을 돌아보게 했고, 이 블로그에 코멘트도 달게 했다.
내가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 판단을 이어받아 도는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물론 아직 이익 실현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포드의 조립라인도 모터가 공장에 들어오고 한참 뒤에야 나왔으니까.
다만 어느 쪽에 서 있을지는 정했다.
모터를 설치하는 쪽이 아니라, 공장을 재배치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
마치며
생각이 굳혀지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도 도달한 답은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점점 새로운 사고가 멈춰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생각을 줄이고, 실행을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