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에서 프로덕트식 계약으로
지난 글에서 예고한 계약 이야기다.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90년 된 질문에서 시작해, 고용이 사실은 보험상품이었다는 것, 그리고 전환의 순서는 결과물의 검사 가능성이 정한다는 생각을 정리했다.
들어가며
지난 글 「제너럴리스트의 시대가 열린다」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프로덕트 단위로 의뢰하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좋아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
찾아보니 이 질문에는 이미 90년 된 이론이 있었고, 그 이론을 따라가다 보니 생각지 못한 반전도 하나 있었다.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 이미 있었다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경제학에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1937년 로널드 코스의 답은 이렇다. 시장에서 그때그때 사람을 구해 일을 시키는 건 비싸다.
사람을 찾고, 조건을 협상하고, 계약서를 쓰고,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는 비용 — 이걸 거래비용이라고 부른다.
이 비용이 회사 안에서 조정하는 비용보다 클 때 회사가 존재하고, 회사의 크기는 두 비용의 균형점에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AI 에이전트가 지우고 있는 게 정확히 이 거래비용이다.
공급자를 찾는 것, 계약 초안을 쓰는 것, 이행을 확인하는 것. 코스의 이론으로 AI 시대를 다시 읽는 글들이 나오고 있고, 어떤 논문은 이 흐름에 코스적 특이점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거래비용이 무너지면 균형점이 움직인다.
물론 AI는 회사 안의 조정비용도 같이 낮추니, 두 비용이 같이 내려가면 방향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시장 쪽 비용이 이 속도로 무너지는 건 처음이라, 균형점이 1인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이 처음 열린 것 같다.
지난 글의 질문이 ‘가성비’였는데, 그 가성비를 다루는 이론이 이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용은 보험상품이기도 했다
물론 바로 반론이 떠오른다. 책임은 누가 지는가.
결과물 단위의 계약은 사실 책임의 계약이기도 하다. 결과물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배상할 주머니가 있어야 계약이 성립하는데, 1인 주체에게는 그 주머니가 없다.
그래서 ‘역시 회사는 안 사라지겠네’로 결론 내리려다가,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었는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직원이 실수로 손해를 내면 어떻게 되나. 원칙적으로 회사가 물고, 직원 개인에게 청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즉 회사는 고용계약 안에 보험을 끼워 팔고 있었다.
월급에서 보이지 않는 보험료를 떼고, 사고가 나면 회사의 깊은 주머니로 배상을 흡수하는 구조.
이렇게 보면 구도가 달라진다.
책임 있는 고용과 책임 없는 계약의 대결이 아니라, 묶음으로 팔리는 보험과 아직 미성숙한 개별 보험의 가격 경쟁이다.
리스크는 선택되는 게 아니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니까.
회사가 묶어 팔던 것들은 쪼개서 팔린 적이 있다
그럼 개별 보험은 성숙할 수 있는가. 선례를 찾아보니 네 가지 정도가 보였다.
사전 검증은 면허가 대신해왔다. 의사와 변호사가 1인 개업을 할 수 있는 건, 면허가 ‘이 사람은 검증됐다’를 회사 대신 보증하기 때문이다.
사후 책임은 배상보험이 대신해왔다. 의료과실 보험이나 전문직 배상책임보험 같은 것들.
이행 담보는 완성보증이 대신해왔다. 할리우드는 프로젝트 단위로 사람이 모였다 흩어지는 산업인데, 영화가 중간에 엎어질 리스크를 완성보증(completion bond)이라는 상품이 담보한다.
그리고 연속 검증은 평판 원장이 대신해왔다. 이베이와 우버의 별점.
특히 마지막 사례가 흥미로웠는데, 플랫폼이 신뢰의 층을 흡수하자 가격 우위가 압승했고 싸움은 생각보다 짧았다.
낯선 개인의 차를 얻어 탄다는, 원래라면 성립하기 어려운 거래가 별점 하나로 일상이 되었으니까.
회사가 묶어서 제공하던 검증과 책임과 담보는, 역사적으로 전부 쪼개져 팔린 적이 있는 것이다.
전환의 순서는 검사 가능성이 정할 것 같다
그럼 어디부터 바뀔까. 이번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가장 뾰족해진 지점이 여기다.
결과물 단위 계약이 먼저 부딪혀본 영역이 있다. 마케팅 같은 영역의 성과 계약이다.
매출이 올랐을 때 그게 실력인지 시장의 흐름인지 가르는 비용이 크고, 그래서 분쟁이 잦다. 수행자는 결과에 영향은 주지만 통제하지는 못하니까.
검증이 비싼 결과물에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고, 계약은 오히려 비싸진다.
반면 소프트웨어는 이상할 정도로 검사가 가능한 결과물이다. 테스트가 돌고, 배포가 되고, 장애율이 찍힌다.
물론 기계가 재는 건 약속한 대로 돌아가는지까지고, 좋은 소프트웨어인지는 여전히 사람의 판정이 필요하다.
그래도 판정의 절반이라도 기계에 맡길 수 있는 영역은 몇 없다.
그러니 전환은 결과물을 기계로 판정할 수 있는 영역부터 오고, 판정이 ‘만약 안 했더라면’에 걸려 있는 영역이 마지막일 것 같다.
소프트웨어가 이 전환의 선두에 있는 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라고 생각한다.
지난 글에서 실행의 직군은 합쳐져도 판정의 축 — 결과물이 좋은지 나쁜지를 가르는 자리 — 은 남는다고 적었는데, 그 판정이 계약의 형태까지 정하는 셈이다.
마치며
그래서 언제 오는가.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별 보험이 아직 미성숙한, 제도의 공백기.
이 공백기에는 프로덕트식 계약이 ‘선택하냐 마냐’의 고민처럼 보이지만, 인프라가 채워지면 고민은 계산이 된다.
우버를 탈지 말지를 지금 고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럼 개인은 무엇을 하면 되나. 자기 보험료를 낮추는 자산을 미리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하면 보험료에는 두 겹이 있다. 사고가 났을 때 물어줄 주머니의 값, 그리고 상대가 나를 검증하는 데 드는 비용.
앞의 것은 솔직히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다. 배상보험이나 완성보증 같은 개별 상품이 채워야 할 자리이고, 공백기가 길어진다면 아마 여기가 병목일 것이다.
다만 뒤의 것은 지금도 낮출 수 있다.
나를 처음 보는 발주자는 이 사람이 진짜 할 수 있는지, 일을 어떻게 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 불확실성만큼 가격을 깎거나 계약을 포기한다.
그런데 판단하고 실패하고 고치는 과정을 공개된 기록으로 쌓아두면, 그 검증 비용을 상대가 아니라 내가 미리 지불해둔 셈이 된다.
공개된 기록은 감사 추적의 대체물이 되고, 결과물을 가르는 판정력은 면허의 대체물이 된다.
생각해보니 이 블로그를 쓰는 일이 정확히 그 작업이다.
계약의 시대가 정말 온다면, 그때 나의 보험료가 조금은 싸져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