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터에그

류기혁 행동 강령

— 행동 강령 · v2 · 2026-07-24

요약을 견디는 건 다, 추상적 판단이 어떤 구체적 몸(관계·경험)을 입고 나온 것들이다.

  1. 좌표. 바다는 “판단”이다 — 유일한 뿌리. 요약을 견디는 모든 것은 판단이 육화된 것. 관계·실시간으로 드러나면 “그 사람이라서”, 형태·경험으로 드러나면 “그 경험이라서”. 둘 다 판단. 나는 판단을 판다.
  2. 엔진. 요약은 결론을 뽑고 판단을 버린다. 그래서 판단과 분리되지 않는 것만 살아남는다.
  3. 판별식. 무엇을 하든 하나만 묻는다 — “요약당하면 죽는가?” Yes면 손대지 않는다. (결론·정보 배달 = 판단이 제거된 것 = 바깥)
  4. 도구. 도구는 판단의 배달을 넓히되, 판단하는 행위를 대체하지 않는다. 나는 루프 안에 남는다.
  5. 원형. 씨앗은 이미 손에 있다. “판단을 파는 도구”의 프로토타입은 이미 돌고 있다.
ryuk@blockchain:~$RyuOlogy

지금 나의 목표

👨 류기혁·#생각· .md

회고를 다시 읽어보니 해마다 같은 불안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불안의 정체를 정리하고, 되고 싶은 모습 하나와 그걸 위한 담백한 목표 하나를 정해봤다.

들어가며

3년 전 회고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큰 꿈을 가지고, 매사에 열심히이며, 실패해도 기죽지 않고, 조직적으로 행동하며 잘 웃는 것’이기 보다,

‘악당처럼 행동하기’ 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목표는 단순해지고, 뚜렷해졌다.

그렇게 나는 ‘악당’이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악당’이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섯 가지를 하나씩 외우는 것보다, 그 한 문장이 훨씬 오래갔다.

목표는 구구절절하면 헷갈리는 것 같다. 담백하고 짧아야 오래 남는다.

지금 나의 목표는 어딜까?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

나는 자꾸 왜 자기개발에 목숨을 걸까. 왜 이렇게 불안할까.

회고를 다시 읽어보면 이 고민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정리해보면, 나는 아마 지금 나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엄청나게 뛰어난 두뇌를 가진 것도 아니고, 크게 성공해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 회사에서 필요한 모습으로, 일반적인 퍼즐 조각의 빈 부분을 메우면서 변해온 조각이다.

그러다 보니 이 조직에 맞는 모양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형태로 나의 경쟁력이 생겼을 수는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과, 이 조직에서만 인정받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계속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떤 조각이어야 할까?

작년 회고에도 비슷한 문장을 적었다.

점점 현재 조직에 맞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괴상한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되었고, 약 4년 전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해소되지 않았던 것 같다.

2025년 회고

시니어가 되어갈수록 조직과 관계와 맥락에 얽힌다.

그러다 보면 어디에나 맞춰 끼울 수 있는 반듯한 조각이 아니라, 이 조직에만 맞는 이상한 모양의 조각이 되어 있다.

오래 그것을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결함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 곳에서 깊어지면 모양은 반드시 그 자리를 닮게 된다. 닮지 않았다면 깊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답이 다시 반듯한 조각으로 돌아가는 것일 리는 없다. 어디에나 끼워지는 조각은, 아무 데서도 아쉽지 않은 조각이기도 하니까.

내가 찾은 답은 모양을 고정하지 않는 쪽이었다.

작년 회고에서 매년 자기소개가 달라지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도 같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빈자리를 보고 내 모양을 바꿀 수 있다면, 조직에 맞춰 변형된 것이 약점이 아니라 그 변형을 해낼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괴상한 퍼즐 조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평범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엔 조건이 하나 붙는다.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울타리 밖에서도 읽혀야 한다. 그리고 그건 말로 증명되지 않고 실제 거래로만 증명된다.

앞에서 적은 불안 두 가지에 하나씩 답을 하는 셈이다. 구체적이지 않다면 밖에서 읽히게 만들면 되고, 이 조직에서만 통하는 것이 걱정이라면 밖에서 확인해보면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밖에서 통하는지를 계속 확인해보고 있다.

그렇게 나는 이런 조각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유연한 퍼즐 조각이다. (근데 진짜 유연한)


매주 한도를 꽉 채운다

그럼 그런 조각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비전을 글로 적고,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이런 구구절절한 목표는 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담백하게 목표 하나만 세워보기로 했다.

나는 Claude Max 20x를 쓰고 있다. 토큰을 다 쓴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금씩 여유로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의 구독제는 너무 가성비가 좋다.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극대화된다. 지금 시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도 느꼈지만, 지금이 딱 그런 혼란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지, 어떤 비전을 가질지를 정하기 전에 매주 이 혜택을 가득 활용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으려고 한다.

목표가 단순해지면 매주 판정이 쉬워진다. 채웠는가, 못 채웠는가.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소모적인 것보다 프로세스를 잡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도를 채우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다. 의미 없이 태우는 것도 채우는 것이니까.

나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최근에 오픈소스 에이전트 게임을 하다가, 에이전트가 보물상자를 열지 못한다는 걸 발견했다. 없는 기능 하나를 그냥 붙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질감이 들었다. 하나 발견해서 하나 붙이는 방식이 점점 소모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큰 시야를 가져보았다. 웹 플레이어는 되는데 에이전트는 안 되는 것들이 상자 말고도 줄줄이 있었고, 상거래와 던전 소품까지 묶어서 한 번에 닫았다.

앞의 것은 140줄이었고, 뒤의 것은 500줄이 넘었다.

중요한 건 분량이 아니다. 발견한 것을 바로 고치는 것과, 그 발견이 놓인 자리를 보고 확인하고 개발하고 검수하는 과정을 한 단계 위에서 돌리는 것의 차이다.

버그 하나를 고치면 버그 하나가 사라진다.

그 버그가 왜 거기 있었는지를 보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까지 함께 사라진다.

한도를 채운다는 목표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앞의 방식으로 채울 때인 것 같다. 부지런히 태우기는 쉽고, 그게 일한 것 같은 기분도 준다.

그래서 목표는 이 한 문장으로 정했다.

매주 한도를 꽉 채운다.


마치며

나는 유연한 퍼즐 조각임을 증명한다.

매주 한도를 꽉 채우면서.

목표도 설정 되었고, 방법도 나왔다.

3년 전에 악당이 되기로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문장이 짧아서 좋다.

이 두 개면 당분간은 헷갈리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이 목표가 흐려질 때, 목표를 늘리는 쪽이 아니라 더 줄이는 쪽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길어진 목표는 대체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나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