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터에그

류기혁 행동 강령

— 행동 강령 · v2 · 2026-07-24

요약을 견디는 건 다, 추상적 판단이 어떤 구체적 몸(관계·경험)을 입고 나온 것들이다.

  1. 좌표. 바다는 “판단”이다 — 유일한 뿌리. 요약을 견디는 모든 것은 판단이 육화된 것. 관계·실시간으로 드러나면 “그 사람이라서”, 형태·경험으로 드러나면 “그 경험이라서”. 둘 다 판단. 나는 판단을 판다.
  2. 엔진. 요약은 결론을 뽑고 판단을 버린다. 그래서 판단과 분리되지 않는 것만 살아남는다.
  3. 판별식. 무엇을 하든 하나만 묻는다 — “요약당하면 죽는가?” Yes면 손대지 않는다. (결론·정보 배달 = 판단이 제거된 것 = 바깥)
  4. 도구. 도구는 판단의 배달을 넓히되, 판단하는 행위를 대체하지 않는다. 나는 루프 안에 남는다.
  5. 원형. 씨앗은 이미 손에 있다. “판단을 파는 도구”의 프로토타입은 이미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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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로맨스 — 끝이 정해져 있어도, 그냥 낭만있게 살기로 했다

👨 류기혁·#생각· .md

공항에서 문득 우주에 관심이 갔다. 우주는 팽창하고 언젠가 모든 에너지는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끝이 정해졌으니 노력할 필요 없다는 논리를 끝까지 밀어보니 오히려 반대의 결론에 도착했다. 끝이 있다는 것이 지금을 사는 이유가 되는 이야기.

공항에서 문득 우주가 궁금해졌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왜 하지?’, ‘무슨 의미가 있지?‘를 너무 오래 고민했고,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중함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냥 멈춰 있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얼마 전,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문득 ‘우주’에 관심이 갔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주는 팽창하고, 언젠가 모든 것은 끝난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아득한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는 멀리 있는 은하까지의 거리를 빛의 색이 얼마나 붉게 늘어졌는지로 잰다는 것, 그리고 그 관측으로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팽창은 점점 빨라지고 있고, 우리가 아직 정체를 모르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그 뒤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에너지는 언젠가 쓸 수 있는 형태를 잃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향한다.

태양계가 끝나기 전에 인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해 계속 살아남는다고 해도, 정말 먼 미래에는 우주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끝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끝이 정해졌으니 노력할 필요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을 멈춰 세운다

여기서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다시 만났다.

‘끝이 정해져 있는데, 왜 노력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의 나를 멈춰 세우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다만 이번에는 대상이 우주였다.

그런데 이 목소리를 우주 끝까지 밀어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인류도 끝나고, 우주도 끝난다면, 그 논리 위에서는 내가 오늘 하는 일도, 어제 한 일도, 앞으로 할 그 무엇도 전부 똑같이 무의미해진다.

‘안 될 건데 왜 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이 관점을 끝까지 적용하면 세상의 모든 행동이 예외 없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특정한 일만 겨냥할 때는 날카롭던 칼이, 우주 전체를 벨 만큼 커지자 아무것도 자르지 못하는 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그냥 고장 난 이유였던 것 같다.

끝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심지어 끝이 정해진 우주를 굳이 탐구할까.

아직 그 끝을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통찰하며 존재의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재미도, 그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며칠 전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흘러가듯 들은 이야기가 있다.

모든 기업은 언젠가 망하고, 몇백 년을 버틴 기업은 극소수이며, 결국 어떤 회사든 엔딩은 소멸이라는 것.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는 남고, 어쩌면 기업은 그 남길 것을 위해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냐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을,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되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돌아보니 예전 회고에도 비슷한 말을 적어둔 적이 있다. 과학자들이 실패 앞에서 좌절하기만 했다면, 지금의 과학은 없었을 거라고.

결국 끝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무언가를 남기고 느끼는 일을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마치며

그래서 나는 조금 단순해지기로 했다.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계산해서, 남보다 더 불행할 필요도, 덜 불행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는 것.

거창한 의미를 먼저 증명하지 않아도,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걸 낭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끝이 정해져 있어도, 그냥 낭만있게 살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이걸 왜 하지?‘라는 목소리에 발이 묶이는 날이 오면, 공항에서 우주를 들여다보던 오늘의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