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Web3가 흥하는 본질은 무법인 것 같다
탈중앙화는 매력적이지만 함정이기도 하다. 지금 Web3가 흥하는 본질은 혁신이 아니라 규제 차익이고, 차익은 늘 한시적이었다. Web2를 배척하지도 Web3를 찬양하지도 말고, 조건을 보고 조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들어가며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어떤 글을 보고 생각했다.
탈중앙화라는 사상은 참 멋지고 매력적이다. 중앙의 권력 없이, 개인이 자기 자산과 데이터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나는 이게 매력적인 만큼 함정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안에서 매일 판단을 내리다 보면, 밖에서 볼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탈중앙화는 결국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다
탈중앙화의 매력을 뒤집어 보면 이렇게 된다.
‘중앙이 없다’는 말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져 줄 주체도 없다는 뜻이다.
개인의 책임은 개인이 진다는 전제가 깔린다. 지갑 키를 잃어버리면 아무도 복구해 주지 않고, 사기를 당해도 되돌려 줄 고객센터가 없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자유의 대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서비스들이 ‘우리는 사용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이유로, Web2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여러 정책을 건너뛰기 시작한다.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이용자를 어떻게 확인할지 같은 것들이다.
Web3가 흥하는 본질은 무법이라고 생각한다
폴리마켓 같은 서비스를 보면 ‘이런 게 Web3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예측 시장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고, 실제로 잘 만든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폴리마켓이 매력적인 진짜 이유가 예측 시장이라는 발상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도박이나 증권 규제로 하기 어려웠던 것을, ‘탈중앙’이라는 우회로로 하기 때문에 뜨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지금 관심이 유지되는 Web3 영역의 상당 부분이, 기술 혁신이라기보다 Web3라는 이름 아래 무법지대로서 사용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무법’이라고 부르면 도덕적 비난처럼 들리는데, 조금 더 정확한 말은 ‘규제 차익’인 것 같다.
기존 규제가 미처 닿지 못한 틈을 파고들어 이익을 얻는 것. 그게 지금 많은 Web3 서비스가 흥하는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규제 차익은 늘 한시적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규제 차익이 역사적으로 한 번도 영원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소리바다가 그랬다. 한동안 무법이었지만, 규제와 산업이 따라잡자 결국 멜론 같은 합법 서비스로 정리되었다.
초기 인터넷 상거래도, 각종 핀테크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규제는 기술을 못 이기는 게 아니라, 그냥 늦을 뿐이다. 그리고 늦었던 규제는 언젠가 도착한다.
그러니 지금 ‘블록체인이라서 안 받아도 되고, Web3라서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 개인정보 처리나 이용자 확인 같은 것들 — 도, 어느 시점엔 반드시 필요해진다.
어떤 시점엔 필요 없지만, 어떤 시점엔 중요하다.
지금 안 지켜도 되는 것들도, 언젠가 지켜야 할 날이 온다는 걸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체인은 특히 그렇다. 모든 거래가 공개 장부에 영구히 남기 때문에, 규제가 도착했을 때 과거를 숨길 수도 없다.
그렇다고 Web2가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가 Web2를 옹호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건 아니다.
Web2가 쌓아온 프로세스들이 다 잘못되고 비효율적이고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다 옳은 것도 아니다.
느리고, 중앙에 권력이 쏠려 있고, 개인이 자기 데이터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문제도 분명히 있다.
Web3는 그 비효율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결국 ‘어느 시점에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Web3의 진화를 보며 가능성을 읽고, Web2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 애초에 블록체인이 주려던 메시지는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부정하지도, 막연히 존경하지도 말라
생각해 보면 세상만사가 다 똑같은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무조건 옳은 것도 없고, 무조건 틀린 것도 없다.
Web3를 막연히 찬양하는 것과, Web2를 막연히 배척하는 것은 사실 같은 게으름의 두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조건을 지우고 진영을 택하는 일이니까.
크립토 판이 유난히 사람을 편 가르게 만드는 것도, 조건을 지우고 진영으로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다 장단점이 있지’에서 멈추면 그것도 곤란하다. 그 말은 진실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을 배우고 조합해 나가는 것.
마치며
부정하지 말고, 막연히 존경하지도 말자.
이게 요즘 내가 붙잡고 있는 태도인 것 같다. 비단 Web3와 Web2 사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언젠가 어떤 기술이, 어떤 사상이 ‘이것이 정답’이라는 얼굴로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막연히 올라타거나 막연히 등 돌리기 전에, 오늘의 이 생각을 한 번 떠올렸으면 좋겠다.
무조건 옳은 것도, 무조건 틀린 것도 없다. 조건을 보고 조합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